[Ep4] 나의 아라니 옥수수 마을 이야기
[Ep4] 나의 아라니 옥수수 마을 이야기
코차밤바 주 아라니(Arani)를 방문했다.
혹자들은 아무 볼 것도 없는 시골 지역에 뭐하러 가냐고 하는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나는 여행한다.
아라니 마을은 옥수수가 잘 자라는 비옥한 토양으로 유명하다. 마을 광장 한복판의 어느 나무 기둥에는 옥수수빵(tostado)을 굽는 안데스 원주민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이 작은 마을은 가가호호 넘실되는 고소한 옥수수향으로 가득하다.
옥수수로 만든 죽과 음료수 중간 형태의 옥수수 액기스인 아피 (api)에 옥수수로 만든 토스타도 (tostado)를 곁들여 아침식사를 했다. 아피에 푹 담은 옥수수빵을 한 입, 두 입 배어물었다.
전통적인 안데스 맛을 음미하고자 집중했는데 밋밋하다는 맛 신호가 내 뇌로 전달됐다.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가 안데스인들에게 허락한 음식에 대해 감동보단 아쉬움이 컸다.
문제는 내 혀였다. 화학조미료로 점철된 먹거리에 익숙한 탓에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할 수 없게 된 나의 맛 세포감각의 문제였다. 인공적인 맛에,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진 도시인. 과연 이것이 현대문명의 축복일까 아니면 족쇄일까.
아라니 옥수수 마을 아침식사하며 개똥철학적 사유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오바한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떠 마을 광장의 교회로 이동했다.
옥수수 빼면 시체인 마을 카톨릭 교회인데 아니나 다를까 내부가 휘황찬란하다. 성모마리아상 대신 놓인 원주민 모습을 한 성녀상이 눈길을 끈다. 볼리비아 교회의 특징 중 하나가 전통문화와 결합된 카톨릭이라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옥수수 향이 풀풀 나는 현지 안내인이 말했다. "본인 집은 허름해도 교회만큼은 예뻐야 해요"
거대한 코차밤바 예수상의 양팔이 뻗친 지역답게 마을사람들 신앙심이 대단하다.
볼 것 없다는 아라니 옥수수 마을 여행에서 나와 안데스인들의 공통점 그리고 차이점을 하나둘씩 발견해가는 재미가 있다. 나와 아라니 마을을 잇는 추억이 생겼다. 우리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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