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미술도서관 :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미래
하늘이 뚫린 것 마냥 쏟아지는 기록적 폭우, 그리고 예년보다 푹푹 찌는 무더위로 기승을 부리는 7월이다. 기후변화로 이미 예견된 극단적 날씨 형태가 지속된다. 한편 집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기엔 전기료가 걱정이다. 궂은 날씨여도 주말엔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도시민의 습성으로 집 앞 카페에서 영상을 보든 책을 읽던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야 한다. 여기서 잠깐, 혹시 장소를 달리해서 아예 도서관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노스웨스트 환경기구 수석 연구원, 존 라이언은『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 (2002, 그물코)』에서 그 중 하나로 '공공도서관'을 꼽았다. 책을 타인과공유하므로 종이 원자재인 나무를 아낄 수 있어 숲을 지킬 수 있다는 것. 결과적으로 지구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까지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의 저서는 당연히 재활용지로 인쇄됐다.
상기 책이 발간된 2002년 당시, 국내 공공도서관 수는 고작 2,211개에 불과했다. 이웃나라 일본은 10,147개 보유했으니 고작 1/5 수준이었던 셈. 그러다 2010년 이후 국내 도서관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2021년 기준으로 일본(10,908개)보다 무려 2,000개 이상 많은 13,023개를 보유하고 있다. 양적 성장은 확인됐고 질적으로는 어떨까? 어쩌면 2019년 개관한 의정부 미술도서관이 바로미터가 될 수 있겠다.
의정부시 예산이 가장 많이 투입된 공공건축물
경기도 의정부시 내 가장 비싼 공공시설 건물은? 100억원 예산을 투입해 2018년 완공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컬링경기장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선수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예약, 이용할 수 있어 무더위 여름 피서지로 유명한 대표 관광지로 인지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무려 세 배 많은 300억 원을 들여 완공한 공공건축물이 바로 의정부 미술도서관이다.
국내 최초 미술과 도서관을 합쳐 놓은 복합문화공공시설로써 연면적 6565.2㎡(2100평) 규모로 서울 시청, 시립미술관 등과 비슷한 규모다. 특히 매끄럽게 빠진 외관과 더불어 내부 면면을 살펴보니 가히 세계적 수준의 공공 도서관이다. 가장 먼저 입장함과 동시에 탁 트인 개방감으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건축학적으로 1층에서 3층까지 천장 구분 없이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하여 높은 층고를 확보한 덕에 실내임에도 웅장하고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 나아가 한 벽면 전체를 통유리로 만들어 자연광으로 밝고 환한 분위기의 공간감까지 연출한다. 이렇게 글라스 룸(glass room) 효과로 인해 도서관 실내와 민락동 하늘능선근린공원 외부가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마치 숲 속 도서관에 온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다. 화룡점정은 내부를 하얀색으로 통일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 날씨와 전시된 책 그리고 방문자들이 물감이 되어 순백의 도화지에 수놓게 된다는 것. 도서관 전체가 하나의 미술품인 셈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중앙도서관
의정부시 미술도서관의 백색공간은 국제적인 트랜드다. 독일 서남부 대표 공공건축물인 슈투트가르트 중앙도서관은 하나의 거대 예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책 읽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적 요소가 예술적으로 구현됐다는 것이다.
이 도서관 건물 벽면 상단엔 '도서관'이란 한글이 적혀있다. 재독 한인 건축가 이은영 씨가 한글을 넣어줘야 설계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덕이다. 슈투트가르트 시가 어떤 자세로 창작자 의견을 존중하며 공공도서관에 예술성을 더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술관을 품은 도서관
모든 시설엔 눈 길을 끄는 랜드마크가 필요하다. 평소 주변에선 볼 수 없지만 이곳에서만 접할 수 있고, 또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눈에 띄는 사물들. 의정부 미술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면 일단 사람 크기만 한 <호크니 빅북(Hockney: A Bigger Book)>이 손님을 맞이한다. 전 세계에 오직 9,000부만 제작된 한정판 에디션 중 하나다. 미술 도서관에 걸맞게 손님맞이 1층은 글로벌 아트 섹션으로 구성했다. 일반도서관에선 보기 힘든 건축, 포토, 회화, 시, 만화 관련 전문 서적으로 넘쳐난다. 대한민국 예술학도라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도 남을 공간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예술 작가들을 위한 특별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1층 전시관에선 현재 <도서관 속 작업실(23.7.12~9.27)>이란 주제로 4명의 작가(김도아, 현소희, 유기주, 허가은) 작품을 전시 중이다. 현대인이 지닌 정서적 요소를 일상의 풍결과 블루의 색을 이용해 구현한 현소희 작가. '주름'이라는 소재에 주목해 캔버스와 종이 위에 해체시킨 허가은 작가. 소수자들의 현실과 행적을 예술로 비춘 김도아 작가. 마지막으로 본인 스스로 신체의 이상 증세 경험 토대로 (마치 만화 '베르세르크'의 작화 느낌을 받은) 다른 시공간 경계의 존재를 표현한 유기주 작가까지. 이들은 도서관 3층 멀티그라운드에 마련된 오픈스튜디오에서 창작활동을 해왔다. 일반 방문자는 입주작가의 창작행위를 유리 너머로 엿볼 수 있다. 게다가 그 옆에는 카페테리아가 갖춰져 있어 누구나 책과 예술의 경계에서 쉼을 가질 수 있다.
도서관을 품은 미술관
의정부 미술도서관의 주요 테마는 예술에 관한 모든 것이지만 역사, 사회, 외국어 등 도서관 기본 교양 카테고리에도 충실하다. 개인 자습을 위해 방문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일반 도서관과의 차이점이라면 사용자를 배려한, 예술적, 심미적 감성으로 가득하단 것이다. 대표적으로 의자에 주목하면 좋다. 이곳은 책 읽는 독자들의 개성을 존중한다. 혹자는 허리 곧추 세워 정독할 수 있는 정독실 스타일을 선호하고, 또 어떤 이는 아예 엎어지거나 드러누워 탐독하고 싶을 수 있다. 일반 도서관이라면 모든 개성을 수용할 순 없지만 모든 것이 갖춰진 미술 도서관에서 만큼은 가능하다. 1층에서 3층까지 곳곳을 탐험하며 본인에 맞는 책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만약 작은 글자를 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어르신들을 위한 큰 글자책 코너(3층)는 물론이거니와 부모님과 함께 온 자녀들이 뒹굴면서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어린이 도서관 섹션(2층)도 있다. 세계적 수준의 독일 도서관 못지않은,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국내 최초 미술도서관이 분명하다.
우리 지역의 미래: 공공도서관에서부터
본 기자는 평소 다양한 도시를 답사중이다. 이번 방문은 '의정부 시티투어' 일환으로 개인적으로는 스탬프 인증 이벤트를 위한 의례적 코스라 생각했다. 그런데 도서관을 품은 미술관이란 복합문화시설로 정체성을 잘 살려 내며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탓에 예전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중앙도서관을 보며 부러웠던 마음이 눈 녹듯 해소됐다. 나아가 기후변화 대응과 문화예술 복지 차원에서 유의미 지역개발 사례라고 본다. 대한민국 지역소멸을 우려하고 지역균형발전을 꾀하는 이들은 의정부에 눈을 돌려볼 것을 주문한다.
오마이뉴스에도 게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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