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쓸까 말까 쓸까 말까,수십 번, 수백 번(?) 고민했는데,
그래도 많은 분들이 제 블로그 포스팅을 봐주시고 또, 가끔이라도 사회이슈를 건드려주시길 바라는 메시지도 종종 받는지라.
'각'잡고 거침없이 제 생각을 풀어보겠습니다.
아! 오늘은 서문이 매우매우 깁니다. 꽤나 장황하게 떠드는 점 선 양해구합니다.
특히 종종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국제개발협력 관계자 분들이 해외 활동 중 다양한 일본사람들을 사귀시는만큼 해당 건에 대해 본인만의 생각을 꼭 정립하시길 바라요.
오늘 제가 다룰 주제는 #강제징용피해자 그리고 그 이면의 다양한 층위로 존재하는 #한일갈등배경 입니다.
먼저 <일본 강제징용피해자 & 위안부 썰>에 앞서, 제 소개를 해야겠네요.
지금까지 저를 피상적으로 알고 걔신 분들은 제가 일본을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시더군요.
그럴만도 합니다. 저는 학부시절 일어교육을 복수전공했고, 일본에도 일정기간 살며 아직도 교류주인 일본 지인도 있는데다, 여기 블로그에는 일본관련 맛집이나 일본노래도 종종 소개하니깐요.
반은 맞고, 반은 사실과 좀 다릅니다.
왜냐하면 제가 일본을 공부하고 지금까지 일본 문화 교류에 적극 가담해온 것은 반세기 이상 경색되어온 양국관계의 얽힌 실타래가 언젠가는 풀려한다고 믿기 때문이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우리 한반도의 안정 및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 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풀뿌리 외교 차원에서라도 상호 문화교류는 지속되어야하기에, 저도 특별히 관심 갖는 것이죠.
https://www.youtube.com/live/u3V-q791O0c?feature=share
(제 유튜브에서 썰도 한번 풀어봤습니다.)
에피소드 하나. 요르단에서 만난 #일본외교관 2명
중동여행에서 일본외교관 3명과 술 한 잔 기울이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만나려고 만난 자리는 아니었고, 다국적 2~30대가 모여 홈파티하던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때 참석자 가운데 일본인, 그것도 중동에 파견된 외교관 2명이 있던거죠. 중동 요르단에서 몇 안되는 동양인들, 그 가운데 일본말을 할 수 있던 저와 그들은 자연스럽게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국외교관 들은 정말 똑똑한데
한일이슈 에서 만큼은 이성의 끈을 놓는 것 같아.
감정적으로 대하더라고!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너흰 일본 외교관되기 전 뭐 했느냐부터, 요르단 생활 등등 다양한 얘기를요. 술이 알딸딸한 상태에서 금새 잊혀질 만한 설익은 대화 가운데, 저 발언만큼은 생생이 뇌리에 박혀있습니다.
저는 이 2명의 일본외교관을 상대한, 우리나라 외교관 분들께 한 국민으로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외교무대에서 '감정적'인 인상을 남긴 우리나라 관료들의 전문성에 문제가 있지 않냐고요? 손해가 아니냐고요? 아뇨. 저는 오히려 한일문제에 대해 역사공부를 제대로 했기때문에, 사적인 자리에서 한일관계청산 건에 대해 감정이 솟구치는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국사에 별 관심없던 저는 당시 큰별쌤 #최태성한국사 를 들으며 공부했는데요. 한반도 역사 가운데 가장 빡돌았던 파트가 #일본식민지시대 였습니다. 저처럼 어떤 이유에서건 국사 공부할 때, 해당 부분을 제대로 공부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나아가 세계시민이라면) 열받을 수밖에 없죠.
마치 야당 진영의 몇몇 인물들이 말도 안되는 종북좌파 노릇을 하고 있는 것과 그 결이 비슷합니다. 누가봐도 문제투성이의 북한정권을 비호하는 종북좌파들이나, 친일파 정신으로 무장한 극우세력이나 모두 매한가지 역사공부를 처음부터 다시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이 머리굵은 사람들이 더이상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아도 되는
대한민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최정점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죠.
역사공부를 다시 처음부터 할 가능성은.. 제로.
이번 #윤석열대통령방일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 외교부의 (박진 외교부 장관) 일본을 대하는 태도가, 기존 한일경색 국면을 야기했던 문재인 정권과 180도 달라졌습니다.
사실 지금 이 글을 보고있는 한국분들이나 또는 일본대중들은 한일관계가 틀어진지 잘 모릅니다.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엔 한국여행을 온 일본인들, 한국문화와 언어를 배우기위해 유학중인 일본학생들로 넘쳐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엔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우리도 일본여행을 많이 가고 있고요.
한편, 정치외교적으로/그리고 경제적으로 미국의 동북아 평화전략 구상에 (이라 쓰고, 미국의 중국 견제하기 전략 이라고 해석) 정권이 바뀔 때마다 롤로코스터를 타는 한일관계의 업앤다운 상황은, 미국 입장에선 참 불편하기 짝이없기에 두 양국에 제발 사이좋게 지내라는 메시지가 직간접적으로 나오는 상황입니다. (2019년 7월/8월)
한국의 수출 주요대상국 (일본 4위, 전체 5.6%)
국내 주요수입국 (일본 3위, 전체 9.5%)
According to data from the Korea International Trade Association, in 2020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수출-수입교역량의 전체 3~4위가 일본일정도로 이웃나라 일본과 원활한 무역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래도 상호 일정부분 손실을 볼수밖에 없는 경제구조입니다. 그건 뒤집으면 일본 경제도 마찬지고요. 수출입길이 막히면 다른 루트를 뚫는 것이 가능하단 것이 (물론 시간은 좀 걸리고 많은 변화가 수반되야겠으나) 21세기 글로벌 무역시대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미국이 양국에 잘 좀 지내라고 주는 압력이나, 무역갈등으로 발생하는 경제손실 등은 우리나라뿐아니라 일본도 함께 처한 상황이죠. 누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느냐의 치킨게임이었는데, 일단 보여진 바로는 #윤석열정부 의 대한민국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간 형태가 됐습니다.
이번 윤석열대통령의 방일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배상 문제 해법 발표 후 한일양국관계 회복을 위해 빠르게 조율된 실무방문 으로 이뤄졌으나, 일부 순서에서는#국빈방문 에 준하는 예우를 갖췄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위대 의장대 사열 은 노무현 대통령 이후 처음있는 환영행사였습니다. 그 사이 3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과의 관계가 쉽지 않았던 기간이 있었기에 언론에서도 #12년만의한일정상회담 이라며 주목했죠.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윤석열 정권이 일본과의 갈등상황을 봉합하기 위해 작정한만큼, 우리나라 대통령과 일본 총리의 만남은 '국빈 방문'에 준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빈 방문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정상회담 의제가 무엇인가요? 단순한 무역봉쇄조치 해제, 이런건가요?
아니죠.
일본이 가해자로 우리 자국민에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 강제징용배상 처리안에 대한 건이었습니다.
정말 제 마음 속에선, 이 건에 대해 정상회담이 해결을 보고자 한다면, 가해자였던 국가의 수장인 기시다 총리가 한국에 와서 윤대통령과 정상회담하고, 또 우리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달하는게 도리지 않을까요?
백번 양보하고, 양보해도, 그렇게 하는게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외교/의전의 모습이 아닐까요?
도대체 뭐가 그리 급해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빈예우를 약간 갖춘 실무방문이라는 희대의 하이브리드 형식으로라도
직접 일본에 이 시기, 이 때에 방문해야했던 것일까요?
그럼 한일갈등의 시발점, #일본강제징용피해자위안부 에 대해 지금까지 왜 이렇게 됐는지 한번 살펴보자.
(쓰다보니 말투가 바꼈네요..그냥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첫번째 팩트 체크]
이미 박정희 대통령 때 일본은 배상을 다했다. 왜 자꾸 더 내놓으라고 지랄이냐?
저는 일본 나고야국립대학교에서 학부 2학년을 1년간 교환학생으로 다녀왔습니다. 당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모시기 수업이 있었고, 다양한 강사들이 차시를 맡아 강의했는데 그 중에 일본 요미우리 신문기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수업에 유일했던 한국인인 제게 저런 류의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 당시 공부가 부족했던 저는 그냥 저 개소리를 듣고만 있어야 했죠. (다시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습니다)
일본인 대부분이 갖고 있는 저 인식의 일부는 맞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청구권 자금으로 5억달러(3억달러 무상/2억달러 차관)를 주었으니깐요.
우리나라 외에도 대일청구권 자금을 받은 나라는 아시아 5개국: 한국보다 가장 피해보상을 받은 필리핀(5억 5천만달러), 인도네시아(2억2천만달러), 미얀마(2억달러), 베트남(3900만달러)이 있습니다.
1965년 당시 (5억 달러/1,332억원)는 현재 화폐가치로 계산하면 45억달러/5조원에 상당함
#대일청구권자금은 10년간 분할제공되었음.
혹자는 우리나라가 필리핀보다도 청구권 금액이 적었단 사실에 한일청구권협정 자체가 굉장히 불공정했다고 분노합니다.
사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하고 병참기지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받은 피해를 생각하면, 단순하게 봐도 필리핀 보다 적은 청구권금액은 말도 안됩니다. 하지만, 제가 늘 국제이슈 포스팅에서 강조하는 내용입니다만, 강한 나라에게는 약하게, 약한 나라에게는 강하게 태도를 달리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비정한 모습입니다.
1950년대 당시 일본 다음으로 잘 살던 필리핀이었기에
가장 많은 청구권금액을 받을 수 있었죠
많은 전문가들이 박정희 때 체결한 1965년 한일기본조약 &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줄기차게 요구해온 배상 및 사과에 대한 요구를 대폭 축소시킨 결과를 낳았으니깐요.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은 정말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발전 시기를 자칫 놓치면 만년 후진국이 될수밖에 없는 신세였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즉 전후 복구 및 경제성장을 위해 박정희 정부는 외국에서 많은 돈을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덕분에 일본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본인들의 전쟁범죄에 대해 패전국이자 가해자로서, 늘 눈엣가시였던 대한민국 피해보상 권리를 손쉽게 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네, 압니다. 대한민국 후손으로서 저도 매우 아쉽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런 선택을 했던 우리 정부의 입장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강한 국력을 갖고 있어야하는거구요. 약하면 잡아 먹힙니다. 역사는 늘 그렇게 반복되니까요.
[두번째 팩트 체크]
그럼 당시 한일청구권 협상으로 끝난는데 돈 더 달라는 논리는 뭐야?
일본의 참 지식인 중에는, (조금더 힘을 들여 이런저런 자료를 조사해 본 분들은) 그 논리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선 제가 전문가 분의 말을 빌려 설명드리겠습니다. (출처) 한일청구권협정 해석의 변천과 대법원 판결 (2019.4.20)
日本語 한일청구권협정 해석의 변천과 대법원 판결 2019.4.20.
도쿄의 변호사 회관 강당에서 열린 국제 학술 심포지엄 '전쟁과 식민지 지배하의 인권 침해의 회복과 평화 구축을 위해'의 기조보고 기록에 가필 정정했다.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정부와 미디어의 맹비난 아시다시피 작년 10.30.신일본제철주금 (현 일본제철)사건 한국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신일본제철주금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명한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와 미디어는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말이나 사과의 말은 한마디도 없이 오로지...
justice.skr.jp
제 2 조의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문구입니다. 비난의 근거는 매우 단순하며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했다
第2条の「両締約国は両締約国およびその国民の財産、権利および利益ならびに請求権に関する問題が完全かつ最終的に解決されたこととなることを確認する」という文言です。非難の根拠は非常に簡単で、「完全かつ最終的に解決した」と書いてあるから完全かつ最終的に解決したはずではないかと 한일청구권조약 제2조 내용
1965년 맺은 한일청구권협정은 어떤 성격이었냐면, 바로 '외교보호권'일뿐, '개인청구권'과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상황은 이렇습니다. 일본이 제안한 '국민의 권리를 포기한다'라는 당시 문구 해석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일본국가는 비록 패전했지만, 히로시마 나가사키 두 군데에 미국의 핵미사일로 피해받은 원폭 피폭자들이 상당했습니다.
그 피해자들은 이 원폭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했죠(=청구권). 당연히 그 청구 대상은 미국과 당시 핵무기 사용을 최종승인한 트루먼 대통령이었어요.
그런데 엉뚱하게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왜냐하면 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국민의 권리'를 포기한다고 했기때문에, 가해자인 미국에 보상 요청을 못하게 됐다고 판단하여 그럼 일본정부가 대신 물어내라!라고 한거죠.
일본 자국민 피폭자들의 이런 요구에 일본정부는 뭐라고 대응했을까요?
일본 정부는 우리 일본인 피폭자들에게 보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상기 조약에 언급된 '국민의 권리를 포기한다'라는 것에 대한 일본정부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국가의 권리인 외교보호권은 조약에 의해 포기할 수 있지만, 개인이 직접 외국에 배상을 요구하는 권리는 국가의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조약으로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쓰여 있는 '포기'란 개인의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권리인 외교보호권을 포기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조약으로 피폭자가 법적으로 손실을 입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상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 다시말해, 개인자격으로 알아서 미국에게 청구하라는 것이죠.
그럼 샌프란시스코조약에 이어 한일청구권조약에서도 일본은 이와 동일하게 체결당시 해석하고 있었을까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서도 체결했을 때부터 동일한 해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인용한 상기 2019.4.20 도쿄 변호사 회관 강당에서 열린 국제 학술 심포지엄 <전쟁과 식민지 지배하의 인권침해의 회복과 평화구축을 위해' 에서 나온 전문가 말을 빌리면,
시의 법령(時の法令)'이라는 관보의 잡지판 같은 것이 있는데 거기에 한일회담의 협상 담당자였던 외무 관료가 해설을 썼습니다.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이란 외교보호권 포기이며 개인청구권 소멸이 아니다. 따라서 한반도에 재산을 남겨 온 일본국민에게 정부가 보상할 필요는 없다'라는 해설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패전 이후 긴급하게 한국을 떠나야했던 일본인들이, 해당 조약이 이후에, 우리가 조선땅에 놓고온 재산은 어찌할거냐. 일본정부가 물어내야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에 대해, "노노노, 이번에 한국과 맺은 조약은 외교보호권 포기일뿐, 개인청구권 소멸은 아니니, 일본정부가 보상은 안해. 너네가 알아서 대한민국에 청구하든지 말든지 해. 그건 너희 개인들의 권리이고, 고스란히 그 권리는 살아있어. 그러니 정부에게 물어댈라고 하지마!" 라는 겁니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서도 1991.8.27.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외무성 조약 국장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일한청구권협정에 있어서 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한 것입니다.그 의미하는 바는…이는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 보호권을 상호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른바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시켰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 여기까지 보면 느낌이 오시죠? 일본은 샌프란시스코조약도, 한일청구권조약도 철저히 자국민들이 지네 일본 정부에게 돈달라는 걸 미연에 방지하고자, 저 조약내용의 뜻은
외교보호권의 포기일뿐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아 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당시 일본정부는 일본국민의 보상청구를 방지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찌들게 가난한 한국에서, 그나라 국민이 일본 법원에게 개인청구권을 들먹이며 소송할 것이라곤 추호도 상상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당시 찌들게 가난한, 약소국이었으니깐요.
그러다가 1990년경부터 강제징용 및 위안부 한국 피해자들이, 개인청구권을 내새워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불과 몇 년 내 대략 50건 정도의 재판이 진행된거죠. 이미 일본 자국민 중에는 개인청구권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없는데, 하필이면 한국인들이 일본 법정까지 찾아와 #일제강제징용배상 을 요구하는 것에 일본정부는 아예 멘탈이 나갑니다.
자. 그런데 일본에서 판결 결과는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원고패소 판결. 기각 또 기각입니다. 어찌보면 예상된 수순이었죠. 일본이 법을 뒤틀어서라도 논리를 뒤집어서라도 무조건 기각해야하는 재판이었습니다.
1997년 12월 24일,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 신천수 씨는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2001년 3월 27일, 원고 패소 판결
2002년 11월 19일 오사카 고등재판소, 항소기각 판결
2003년 10월 9일, 일본 최고재판소 상고기각 판결
피해자 개개인의 구상권 청구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인정해주는 순간, 한국과 다른 나라 피해자들로부터 상상 이상의 줄소송과 천문학적인 피해보상요구가 이어질 것은 안봐도 뻔합니다. 그정도로 당시 일본제국은 정말 많은 타국 사람들에게 강제징용을 비롯한 비윤리적인 행위를 일삼았죠.
여러분은 법을 신뢰하시나요? 저는 신뢰합니다. 법치국가를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정해야합니다. 보통은 잘 작동하는 법이지만, 사실 이렇게 국익과 결부된 사안에 대해서는, 법의 해석도 빈대떡 뒤집듯 막 뒤집어지는 것이죠. 일본은 그렇게 본인들의 해석을 뒤집고 '위 채무는 소멸하였다'고 설시하고, 그 외 여러가지 이유(강제지용 피해의 시효 소멸 등)를 들어 한국인 원고에 대해 패소 및 기각 판결을 했습니다.
본인들의 해석을 뒤집어서라도, 일본은 줄소송을 막고 싶었을겁니다.
언떤 자료를 들이밀건간에 강제징용에 대해 인정할 수 없었을겁니다.
이것이 2차세계대전 전범국가로서 아직까지 '선진국'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일본의 민낯입니다.
“조선은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 “당시 일본국 정부, 조선총독부 등이 전시 하의 노무동원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위 원고들은 모두 노동자 모집 당시의 설명에 응하여 그 의사에 의하여 응모함으로써 오사카제철소에서 노동하기에 이른 것이고, 이들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연행한 것은 아니다." [...] “위 원고들이 응모한 1943년 9월 경에는 이미 ‘조선인 내지이주 알선요강’에 따라 사업주의 보도원(보도원)이 지방행정기관, 경찰, 그리고 조선노무협회 등이 연계된 협력을 받아 단기간에 목적한 인원수를 확보하고, 확보된 조선인 노무자는 사업주의 보도원에 의해 인솔되어 일본의 사업소로 연행되는 ‘관 알선 방식’으로 징용이 실시되었는데, 이것은 일본국 정부가 후생성과 조선총독부의 통제 하에 조선인 노동력을 중요기업에 도입하여 생산기구에 편입하려는 계획 하에 진행된 것” 일본법원 판결 "일본의 한국병합 경위에 대해"
[세번째 팩트체크]
왜 한국은 우리 일본보고 자꾸 사과하라고 합니까?
상기 일본법원의 판결문에 나온 설명처럼 일본은 강제징용에 대해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위안부피해자는? 식민지배에 대해선? 상황에 따라 사과를 한 적도 있으나, 좀더 극우 성향의 총리가 들어서면 나몰라라 배째라 식입니다.
이게 어떤 상황과 비슷하냐면,
마치, 우리나라 여야 보수진보가 합심하여 통과시킨 518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까지 있는 마당에 틈만 나면 극우성향 정치인들이 민주화운동 정신을 폄훼하고, 아예 부정하는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우리 국민이 왜 노이로제 걸릴정도로 과거사 바로세우기 운동을 하는지 아시나요?
왜 곳곳에 기념관, 소녀상 등을 설치해 기념하려는지 아시나요?
바로 이렇게 틈만나면 역사왜곡을 일삼는 부정한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너무나 역사적으로 명백한 전범국, 일본 정부나 법원의 태도에 사죄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라고요, 이미 사죄했다고요? 물론 아주 잠시동안 과오를 인정한 기간도 있습니다.
1992년 관방장관 가토 고이치[加藤統一]가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운영·감독에 관여했다고 처음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으나, ‘위안부’ 강제 동원은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었습니다.
이듬해인 1993년에 고노 담화가 나왔죠. 고노 담화에서 일본정부는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시인과 일본군의 개입을 인정했으며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일본 81대 총리인 #무라야마도미이치 가 1995년 8월 15일 발표한 성명이었습니다.
이게 왜 의미가 있냐면 #일본현직총리 가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한 최초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정식명칭은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戦後50周年の終戦記念日にあたって)>입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에게 여러모로 깊은 인상을 남긴 아베신조 총리부터 슬슬 두리뭉실하게 사과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매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광복절이요, 일본 입장에서는 종전기념일입니다.
전쟁을 벌인 과오는 인정하나 결코, 위안부를 전시 강제동원한 일은 없고, 강제징용도 없었다는거죠.
다시말해, 과거 일본 정치인들의 담화에서 포함된 주요 워딩들이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슬그머니 빠지고, 또 부정하는 모습이 되풀이됩니다.
자. 이렇게 정권에 따라 총리에 따라 사과의 말이 바뀌는 상황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일본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일본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받기 위해서는?
일본이 감히 범접할 수없도록 국제외교무대에서 연대해야합니다.
2007년 미국 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일본계 3세인 마이클 혼다(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발의하고 하원 의원 435명 가운데 168명이 서명,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위안부 결의안을 상정해 표결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미국 상.하원을 통틀어 미 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제121호)을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미국에서 쏘아올린 이 공의 파장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우리가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인 일본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함께 연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 것이죠.
호주 상원 2007년 9월 20일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채택했다.
네덜란드 하원은 2007년 11월 8일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채택
캐나다 하원은 2007년 11월28일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채택.
필리핀 하원 2008년 3월11일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채택했다.
대만 입법원은 2008년 11월11일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채택
당시 로이스 미국 외교위원장 왈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스럽고,
아베 총리는 역사를 직시하고 진솔하게 사과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독일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었죠.
같은 전범국가였던 독일은 경제적 배상과 더불어 기회가 날 때마다 사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일본은 어땠을까요? 지금까지 보여드린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법원 판결이나, 아베 총리 등을 비롯한 진심이 전혀 안담긴 아무말대잔치 등 우리 국민은 일본 정부의 말도 엉망인데다, 행동까지 개차반인 태도에 질리게 된 것입니다.
왜 자꾸 사과하라는지 이젠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봅니다.
우리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는 문재인 정부의 혼란했던 시기가 어서 끝나길 바랐습니다.
문 대통령에게 기대했던게 컸기 때문일까요, 그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빨리 정권이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이 시기에 기억나는 주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최종 기각된 <일제 강제징용 배상> 소송 건을, 우리나라 법원에서 피해자들이 다퉈보기로 한 것이죠.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우리나라 누구에게 소송했단 것인가요?
바로 조선시대의 일본제철(신일철주금)이자 현재 신일본제철로 불리는 기업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대한민국에 자산이 있기 때문이죠. 1심과 2심에서 연이어 패소를 했는데, 마지막 대법원에서 "앞서 계속 설명드린 개인청구권을 인정"했고, 또 이 피해 사건의 소멸시호가 소를 제기할 시점까지 인정되면서 대법원에서 막판 연적극이 펼쳐집니다.
국내외적으로 굉장히 주목했던 대법원 판결인만큼, 우리나라 법무부 TV에서도 해당 건에 대해 이렇게 유튜브영상으로 어떤 이유에서 우리 대법원이 우리나라 내 자산을 가진 일본기업에 대해 강제징용 건에 대해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는지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시간이 참 오래 걸렸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한에서 대한민국은 이렇게 저렇게 한일관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그 나름의 쾌거를 거둬왔습니다. 그 이후 문재인 정부의 태도도 주목할만합니다.
대법원 판결이 난 뒤, 우리나라 개인은 패소 전범기업으로부터 배상을 받을 법적근거가 생겼습니다.
그 법적효력이 오로지 우리나라에 자산이 있는 일본전범기업에 해당하더라도, 그동안 배상과 사과함에 있어 미온적인 태도의 일본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상황이고요.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후 한국 1심에서 또 다른 강제징용 손배소가 각하되면서 대한민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집니다.
각하시킨 이유는 다름 아닌, "헌법상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위한 조약 의해, 청구권에 제한"된다는 것이었죠. (김양호 판사) 좀더 쉽게 풀이하면 "손해배상을 인정하면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1심부에서 일본법원과 같은 이유로 뒤집는 것을 보며 이거 참..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이와 별개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격노한 일본은, 바로 수출규제(반도체 소재 등)을 통해 한일 무역분쟁의 서막을 알립니다.
당시 아베 총리는 '한국과의 신뢰관계', '수출 관리를 둘러싼 부적절한 사안 발생' 등을 이유로 재제를 한다고 두리뭉실하게 언급했는데, 특히 한국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발언하며 공분을 샀죠.
아베 왈 "강제노역 문제에 대해 한국이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게 명확해졌다며, 무역 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은 당연하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특정 이유없이 무역갈등을 초래할 경우, WTO에 소송을 할 수 있기에 우리정부는 소를 제기합니다. 만, 윤석열 정부 들어선 이후까지도 해당 소송이 큰 반향을 이끌어내진 못한채 지지부진해진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외교부는, 이대로 한일관계를 유지할 순 없다, 내가 새 방향을 제시하겠다며, 일본에 직접 넘어가서 십여년만에 갖은 상징적인 한일정상'단독'회담을 번갯불에 콩굽듯이 하고 온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아쉬운 점이 참 많습니다.
12년 만에 열린 한일 단독 회담을 국빈방문도 아니고, 급하게 실무방문 형태로 기획해서 뭐하나 남는 것 없는, 소위 굴욕.굴종외교라고 불릴수밖에 없는 무리수 일정을 짠 것일까?
현재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받은 것은 사실상...
오히려 일본과 오랜기간 첨예하게 각을 세우며 우리나라 위안부/강제징용 이슈를 국제화시키는데 공들여온 노력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그 참담한 서막을 알리는 첫단추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출국전, 용산 집무실로 요미우리 기자를 불러 단독인터뷰를 가졌습니다. 해당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가해자에게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우리 돈으로 우리 피해자들에게 보상한다는 논란의 제3자 변제 해법에 대해
“대통령 출마 전부터 ‘제3자 변제’ 방식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고 말하며, 특히 일본 측이 우려하고 있는 일본 내 가해 기업에 대한 구상권 청구 가능성에 대해서도 “나중에 구상권 행사가 되지 않도록 하는 해결책”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리 대법원의 판결 내용을 뒤집은 당시 1심 재판부의 생각과 크게 다를바 없죠.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전했습니다.
강제징용해법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먼저 물컵에 반 잔을 채웠습니다. 일본은 곧 선거가 끝나고 5월쯤 한국에서 2차정상회담을 갖을텐데, 나머지 물컵 절반을 채워야하는데 적잖이 부담을 느낄 겁니다. 일본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봐주시죠. by 박진 외교부 장관,,
윤석열 정부가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시간이 아직 4년이나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윤석열 정부가 안정된 국정운영을 해나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가 똥볼 차면 찰수록 그다음 더더욱 수습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외교이기 때문입니다.
'비가역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컵의 남은 절반을 채울까요?
아니, 과연 기시다 총리 내각이 채우기나 할까요?
저는 이번 정상회담 결과가 가져올 나비효과보다, 그에 앞서,
우리나라 정치인 및 관료 머리에 뿌리깊에 박힌 '식민사관'이 두렵습니다.
그런 자들이 국정운영을 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아마도 어두울겁니다.
[갈무리]
저는 복수전공으로 일본어교육 (일교) 을 했습니다.
일본 문부성장학금을 받아 나고야대학교에서 2학년 시기를 보냈죠. 일본에서 잠시 스쳐지나간 어느 한국인 선배가, 왜 일본이 그런 장학금을 전세계 학생들에게 주는지 아느냐 물으며 이렇게 강조하더군요.
친일파를 만드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어교육 관련 여러 수업 중 한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한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일본어를 굳이 배워 가르치는 이유는, 일본과 늘 소통하기 위해서다. 우리 한국인 가운데 누군가는 일본을 정확히 이해하고, 양국간 난제를 풀어가야한다."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질만한 교수님은 아니었으나, 이 말씀만큼은 기억나더군요. 제겐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일본인 목사님, 호스트 패밀리, 친구들이 있습니다.
꽤나 마음을 주고 받은 지인들이기에, 이들을 위해서라도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죠. 일본정부가 바뀌기 위해선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기대야합니다. 저는 일본시민사회와 일본의 집단지성 에 기대를 겁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초를 치는 일은 없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사 단체의 성명서를 발췌해 올립니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안에 반대하는 역사 관련 단체 성명서>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사죄 없는 배상안 철회를 요구한다
역사 관련 학회와 단체들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안에 반대한다.
첫째, 이번 윤석열 정부의 배상안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헌법 전문에 명시되었듯이, 대한민국은 삼일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1919년 독립선언서에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임을 분명히 밝혔다. 우리는 이러한 삼일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고 지난 70여 년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규명하며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도 같은 정신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배상안에 의하면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은 침략과 강권의 식민지배를 반성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삼일운동과 헌법의 정신, 우리나라의 근간을 흔든다.
둘째, 이번 윤석열 정부의 배상안은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훼손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인류는 군국주의와 전체주의가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노력했다. 냉전으로 인해 비록 철저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명시했던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은 과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팽창정책이 인류 발전에 역행하고 인류 문명에 심각한 위협이었음을 규정하였다. 뉘른베르크 재판과 도쿄 재판은 인류의 희망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노력이었다. 이러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근거하여 대법원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직결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준엄히 심판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배상안은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반인도적 행위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인류의 보편적 가치, 평화와 인권을 해친다.
역사학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광복 이후 지금까지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만이 아니라 식민지배를 경험한 국가 대부분에서 진행되었으며, 21세기에 들어서 식민지배 책임 문제는 이제 국제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회의에서 인종차별, 빈곤과 경제 격차의 기원으로 식민주의가 지적되었으며, 케냐의 ‘마우마우’ 탄압 재판, 인도네시아의 ‘라와게데’ 학살 재판에서 보듯이 국제적으로 식민지배의 책임을 묻고 그 피해에 대해 사과와 배상이 시작되었다. 이제 ‘탈식민’은 21세기 인류의 공동 과제이며,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에 대한 배상 판결은 이러한 세계의 탈식민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일본인을 적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불행한 과거를 미래의 평화를 위한 자양분으로 삼기 위해서 한일 두 나라 시민, 나아가 세계 시민의 이해와 연대가 필요하다.
우리 역사학자들은 이웃 국가와 협력해야 한다는 대의를 환영하며, 과거사가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 않고서 어떻게 평화롭고 인권을 존중하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겠는가?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사과와 배상에 대한 어떠한 보장도 없이 ‘제삼자 변제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려는 방안은 아무런 반성 없는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과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이에 역사 관련 학회와 단체들은 이번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안에 단호히 반대한다. 피해 당사자 한 분이 ‘사죄 없이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에 적극 공감한다. 독립선언서에서 언급했듯이 후대에 “괴롭고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사죄 없는 배상안을 철회해야 한다. 아울러 사법부의 판단을 사실상 무력화한 행정부의 결정이 삼권분립을 위반함으로써 민주주의 정신을 퇴색시키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심각한 우려를 현 정부에 전달하는 바이다.
2023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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