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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수술 및 재활 일상

[병상일지 Ep 0] 해외에서 무릎 연골 다친 이야기 - 볼리비아 와이나 포토시 설산 등반

by Keep Secrets to Yourself 2023.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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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릎환자입니다.
2023년 4월 4일(화)에 '왼쪽'무릎뼈에 구멍을 내는 미세천공술을 받고 지금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이번 수술은 제 인생에서 있어 세번째 수술입니다. 참 슬프기 그지 없습니다.
한참 일할 나이인 만 38세(1984년생)에 앞으로 6주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물론 지나고나면 이 괴로움도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못난 과오를 공개하여 제 자신을 반성하고 앞으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또 누군가는 반면교사 삼을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티스토리 병상일지>를 시작합니다.


 왜 나의 무릎 연골은 망가졌는가.
어디서부터 이 사단이 시작됐는지에 대하여.
볼리비아 6088m 와이나포토시 설산 정산에서 (2019년)

바야흐로 2019년 전 사건을 복기해봅니다.

볼리비아에는 세계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오르기 가장 6000급 설산이 있습니다. 등산 잼병인 저도 올랐으니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도 가능하십니다.
물론, 마지막 캠프에서 100명이 올라가면 그 중 75명은 중간에 하산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6000m급에서 일반인이 준비없이 오르기 쉬운 산 - 볼리비아 와이나포토시 라는 것은, 제가 직접 증명했습니다.

남미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에서 오를 수 있는 6088미터 설산 와이나 포토시 - 아름답다

 
원래 와이나포토시 등반을 위해서는 최소 2박3일 길게는 4박5일 머물면서, 호흡정비 및 장비착용 후 설산 등반 훈련 등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 라파즈는 약 해발 4000미터로 고산증이 오는 지역으로써 그보다 몇천미터 이상 높이의 와이나 포토시를 등반하기 위해선 고산에 대한 충분한 적응이 필수였으니까요.
또한, 사람들이 돌려쓴 남미의 후진 등산장비들이 앞으로 몇시간 동안 걸어야하는 제 몸에 착 맞기 위해선, 또 맞는 것을 잘 선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꼼꼼이 살펴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몸뚱아리 하나가 유일한 재산인데, 그것을 너무 과신했었어요.  
 

볼리비아에 가시려면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여행비자 받으셔야 해요(바꼈을까?)

 
저는 2018년~2019년에 이곳 남미 볼리비아 코차밤바라는 곳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원래 이런 산행코스는 휴가를 붙여 올라가야하는데, 멍청하게도 주말을 이용해 무박 2일 일정(토-일)으로 겁도 없이 도전했던 것이죠.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극사실주의 여행 예능
시간
일 오후 4:30 (2022-12-11~)
출연
기안84, 이시언, 빠니보틀, 사이먼 도미닉, 장도연, 송민호, 이승훈
채널
MBC

 
요새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와 같은 남미여행 예능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아마 많은 분들이 와이나포토시 등반에 관심있으실 것 같아요. 일반적인 등산일정은 다음과 같아요.
(여행사 차로 진입할 수 없는 곳으로 이동) 1차베이스 캠프 - 캠프 1박 이상하며 장비/등반훈련 - 돌산을 걸어(평균 3시간 소요) 2차베이스캠프 도착(5pm) - 2차베이스캠프에서 저녁 식사 후 밤 11시까지 휴식 - 밤12시 설산 등반 시작 - 오전 7~8시 정상 도착 및 하산   
 

저희 팀은 스웨덴1 스페인1 한국인2 이었습니다.

 
정말 가는 길이 너무 예뻤습니다. 등산하는 분들이 산을 탈수밖에 없는 이유를 저는 이번 등반에서 깨달았죠. 대자연에 심취해 걷고 또 걷다보면 어느새 안데스 원주민들이 마련해놓은 아늑한 2차 베이스캠프에 도착합니다.
이 고산지대에서 평생을 살아온 원주민들의 체력에는 혀를 내두를정도. 역시 세계는 넓고 경험할 것은 많습니다.
 

 
아. 맞다. 돌산을 걸으면서 1미터 올라갈때마다 호흡이 콱콱 막혀옵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자주 쉬어줘야하는데요. 보시다시피 전세계에서 몰려든 등산객들이 발자취를 남기는 방명록을 적는 중간 휴게소(?)도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적부터 태권도를 꾸준히 했습니다. 동네 도장출신입니다만, 뭐든 꾸준히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결과적으로 성인이되어 태권도 4단을 땄고, 그 이후 국기원 사범연수까지 신청하여 시험쳐서 태권도사범자격증(3급)까지 획득했습니다.
태권도 하신 분들은 다들 공감하실텐데, 일반인들보다 하체가 많이 발달되어 있죠. 제가 평소에 생각했던 제 장점 중 하나였는데, 지나친 과신은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산을 오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미 여러 한국인들께서 깃발을 꽂고 다녀오셨더라고요. 이 맛에 미지의 세계를 탐방하는 것 같아요.
저도 미리 준비한 제 명함과 미니태극기를 베이스캠프에 기념으로 부착해둡니다.

 
2차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해발 5273미터입니다. 이때까지만해도 몸 컨디션이 괜찮았습니다. 그동안 무릎을 아팠던 적도 없었기 때문에 고산 호흡만 잘 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식사 후 전원 취침했습니다. 자정에 일어나서 본격적으로 정상을 향한 등반을 시작해야 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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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또다른 한국인 1인은 모든 사람들과 달리 유일하게 <1차-2차-정상>까지 한번에 올라간 인물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었는데, 왜 쉴 땐 쉬어야하는지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서로에게 묵인 줄에 의지하여 한걸음 한걸음 발을 움직입니다. 저는 이때까지도 모든게 괜찮았습니다. 호흡도 좋았고 발도 피로하지 않았어요. 물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연골이 조금씩 뜯겨져 나갔다는 사실도 모른채 말이죠.

 
수도 라파즈의 오랜지 빛이 가득하게, 찬란하게 비취는 광경을 볼 때쯤, (한 2~3시간 경과) 포기자들이 속출했습니다. 함께 동반하던 20팀 가운데 총 8팀이 먼저 여기서 하산을 결정했죠. 팀별로 끈으로 동여맺기 때문에, 팀원 중 한 명이 포기하면 나머지 일행도 모두 포기하거나 아니면 다른 팀에 붙어야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는 심정이 어떨까요?
제가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차라리 이때 포기하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어리석게 이 때 포기하지 않고 산행을 감행했을까.. (사진으로 보니) 참으로 아쉬운 순간입니다.
 

그래도 이 장면은 잊혀지질 않습니다. 너무 예쁜 일출장면. 자연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경사가 상당했습니다. 사실 이 때도 호흡은 괜찮았습니다. 고산에 특화된 신체라 생각했죠. 무릎통증도 잘 못느꼈었고요.
그런데 발이 좀 통통하게 뿔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등산화가 너무 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평발이어서 발바닥 통증도 상당했고요. 사실 이때부터 제 몸은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상이 눈 앞인지라 저는 포기않고 계속 올라갔죠. (팀원도 생각해야 했고) 

 
그렇게 정상에 올랐습니다. 발바닥이 너무 아팠지만, 이 정상 등반의 쾌감을 느끼고자 저는 고통을 참고 기어코 오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더 큰 문제가 남아있었는데요. 바로 하산입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우리 무릎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무릎에 더 큰 부담이 생긴다고 합니다. 어렸을적엔 올라가는게 힘들고 내려가는 것은 너무 쉽다보니 휙휙 점프하며 내려갔었는데, 사실 그 어린시절부터 조심했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무릎은 내려갈 때 가장 크게 손상될 수 있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순간부터 무릎이 찌릿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그 찌릿했던 순간은 제가 지금껏 경험해보지못한 감각이었어요. 곧 괜찮아지겠지하고 남들과 함께 빠른 속도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좀 빨리 서둘러야했던 이유는, 해가 뜨기 시작하면 눈이 녹으면서 지면이 굉장히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고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자정에 출발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결론만 말씀드리면, 저 때문에 저희 여행사는 대략 1시간 30분정도 다른 차량보다 1차베이스캠프에서 출발을 늦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설산-2차베이스캠프>구간을 내려온 뒤 무릎 통증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져서 <2차-1차 베이스캠프>구간 중 평평한 지형에서는 뒤로 걸어야만 이동이 가능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죠.
돌산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저를 업어주거나 할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매고 있던 배낭도 (누가 들어주겠다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나) 저는 알량한 자존심이 발동하여, 제가 끝까지 매고 가겠다고 했죠. 누군가에게 배낭을 맡기면, 이번 등반은 오롯이 내 힘으로 이뤄낸 것 같지 않다는 이상한 오기가 생겼었습니다. 희한하죠.
 

 
그렇게 제 발바닥과 무릎, 특히 무릎이 심하게 부은채 저는 하산을 마쳤습니다. 그 이후엔 당연히 현지 병원가서 (자세한 검사는 하지 못하고) 진통제를 처방받아 귀국할 때까지 버텼습니다.
제가 통증이 얼마나 심했냐면, 당시 볼리비아 근무하며 주말에 승마를 배우고있었는데요. 말탈 때 앉아있음에도 그 흔들리는 충격에 무릎이 아파서 승마교육 정액권을 이미 끊어놨음에도 승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중간에 배우다가 몸이 아파서 포기하는 경우도 지금까지 없었는데, 그렇게 승마도 못하고, 그 좋아하던 러닝도 못하고, 남미댄스인 줌바도 못하는 상태로 남은 몇개월을 보내고 귀국했습니다. 
그깟 정상등반이 뭐라고, 무릎통증과 바꿔가며 한 것일까요. 저는 이후로 제 삶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놔야 했습니다. 
무모하게 등반만 하지 않았더라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등산했더라면, 좋은 장비를 선택해 등산했더라면.. 오만가지 후회가 제 머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귀국했습니다. 
진통제를 먹으면서 버틴게 수개월. 그 사이에 오른쪽 무릎이 붓고 물이 차는 현상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결국 병원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봤는데 뼈에는 문제가 없었더군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엄청 뺐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만 컨디션이 돌아오면 다시 왕성히 걷고, 그러다가 또 물이 차고. 이 경험이 반복되어 발생하여 결국 MRI를 찍게 되는데, 오른쪽 무릎이 5mm 찢어진 부위가 있음이 확인 됐죠.
의사는 보통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정도는 수술할 정도는 아닌데 좀 지켜보자고.
약물과 주사를 병행하고 꾸준히 하체운동하면서 상태를 지켜보자고 말이죠.

 
원론적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세번째 수술을 거치면서, 저도 제 나름대로 무릎 전문가가 된만큼, 저 말에는 큰 의미가 숨겨져있더라고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평소처럼 생활하면 결국 수술대에 이르는 것이 바로 무릎입니다.
이게 제 병상일지의 시작점입니다.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제가 어떤 빙구짓을 해서 무릎을 혹사시키고 이꼴로 만들었는지 썰을 이어나겠습니다.
그럼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모두가 건강한 무릎 만드는 그날까지.


[에필로그] 볼리비아에서 패러글라이딩의 추억

 
무릎 팔팔할 때는 이렇게 패러글라이딩 체험도 하고 정말 재밌게 살았었는데 ㅠ
건강 잃으니 모든 재미가 다 사라진 느낌입니다. 끄어헝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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